건물이 좋은 건축이 되려면,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페터 춤토르Of Possible-The Findling숲으로 돌아가는 길미국 뉴욕주 오스터리츠, 안개 낀 활엽수림 사이로 나무 오두막 한 채가 땅에서 살짝 떠 있다. 오브 파서블이 설계한 이 91제곱미터, 약 28평 규모의 리트리트는 맨해튼에서 활동하는 두 정신분석가 부부가 의뢰했다. 이들은 과거 다른 건축가와의 힘겨운 작업을 거치며 자신들의 전원 부지와 소원해진 상태였다. 이번 프로젝트가 짊어진 과제는 단순한 공간 복원이 아니었다.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를 되살리는 일이었다. 그 치유적 전제는 장식이 아니라 모든 재료 선택의 근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회복을 향한 건축을 만들어냈다.건물은 세 가지 요소로 나뉘..
땅을 가볍게 딛어라호주 원주민의 오랜 속담이자, 건축가 글렌 머컷이 평생토록 새겨온 말 Miller Hull Partnership-Trestle Cabin비탈과 전나무 사이에서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110여 킬로미터, 샐리시해(Salish Sea)에 떠 있는 외딴 섬 하나에 트레슬 캐빈이 자리한다. 전나무와 마드로뇨가 빽빽이 들어찬 비탈 끝, 산후안 제도(San Juan Islands)를 향해 남쪽으로 시야가 트인 자리다. 가파른 지형과 까다로운 접근로는 설계를 가로막는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이 되었다. 밀러 헐 파트너십(Miller Hull Partnership)은 경사면을 깎아내는 대신, 거주 공간 전체를 나무 캐노피 사이로 들어올리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지면은 다시 섬의 동식물에게 돌아갔고,..
"집은 바깥세상에서 편안함과 친밀함을 찾을 수 있는 최후의 장소여야 한다."— 루이스 바라간 (Luis Barragán) Wahana Architects-El House환대의 집 엘 하우스(El House)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대가족과 절친한 친구들, 그리고 가까운 동료들을 위한 따뜻한 안식처로 기획되었다. 자카르타(Jakarta)의 주거지 한편, 강변 대지에 자리 잡은 이 집은 세대와 관계를 아우르는 유대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진심 어린 바람에서 출발한다. 와하나 아키텍츠(Wahana Architects)는 그 바람에 답하듯, 편안함과 여유가 자연스럽게 모임의 분위기를 이끄는 집을 설계했다. 특별한 격식 없이도 삶이 흘러들고 사람이 모이는 곳,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삶의 구심점 집의 공간 ..
"건축은 자연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예술이다."— 알바 알토 (Alvar Aalto) Neil Logan-Studio & Guest House땅의 기억을 따라 뉴욕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울창한 숲 속에 두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주택 한 동과 창고 한 동. 닐 로건(Neil Logan)이 이 두 동을 다시 지으면서 선택한 원칙은 단 하나였다. 건물이 서 있던 터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 쓴다. 토대까지 허물고 다시 올린 이 작업을 로건은 '급진적 보존'이라 부른다. 건물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지만, 과거의 흔적은 대지와의 관계 하나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터만 보존하고 구조물은 교체한다는 결정은 단순한 공간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골 땅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다. 새..
"자연은 최고의 건축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대화에 겸손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 MICHELE SICHER ARCHITETTO-Pineta Nature Resort숲이 열리는 자리 트렌티노(Trentino)의 산림 지대, 알프스의 능선이 지평선을 가득 채우는 자리에 피네타 네이처 리조트(Pineta Nature Resort)가 자리한다. 전통 알파인 목조 건물들이 완만한 경사지에 흩어져 있는 이 부지 위로, 건축가 미켈레 시케르(Michele Sicher)는 오래된 풍경과 새로운 건축 사이의 경계를 다시 묻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 샬레들의 어두운 목재 외벽과 기와지붕이 세월의 결을 드러내는 한편, 경사지 끝에 새로 들어선 웰니스 SPA동은 낙엽송(l..
"건축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는 기술이다."— 알바 알토 (Alvar Aalto) Mimosa Architects shapes Czech cabin from "rock, river and fire"불 이후의 땅 사자바 강이 흐르는 숲 가장자리에, 한때 오두막이 서 있었다. 불이 지나간 뒤 남은 것은 돌뿐이었다. 타다 남은 석조 기단. 그러나 체코의 건축 스튜디오 Mimosa Architects는 그 잔해를 허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토대 삼아, 새로운 오두막을 그 위에 다시 세웠다. 기단을 살린 선택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었다. 책임건축가 페트르 모라체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의 석조 기단을 재사용함으로써 새 기초 공사를 피하고, 대지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지를 가볍게 어루만져라." — 글렌 머컷(Glenn Murcutt) Studio Gang-Samuel H. Scripps Theater Center허드슨 밸리의 품 안으로 허드슨 밸리의 광활한 구릉지를 굽이쳐 오르는 길 끝에, 한 극장이 대지와 조용히 어우러져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검은 지붕이 초록 들판 위에 낮게 앉아 있고, 그 너머로 허드슨 강과 허드슨 하이랜즈(Hudson Highlands)의 능선이 하나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스튜디오 갱(Studio Gang)이 허드슨 밸리 셰익스피어(Hudson Valley Shakespeare, HVS)를 위해 설계한 새뮤얼 H. 스크립스 시어터 센터(Samuel H. Scripps Theater Center)는 그렇게, 건축물이 ..
"건축은 공간, 빛, 그리고 질서다." —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MATA Architects-Panoramic House정원으로 내려서다 런던 햄스테드(Hampstead)의 레딩턴 & 프로그널 보존 구역(Reddington and Frognal Conservation Area). 이 오래된 동네의 한 가족은 오랫동안 역설 속에 살았다. 집의 지상층 창밖으로는 남향의 넉넉한 정원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 정원은 언제나 1.5미터 아래에 있었다. 긴 계단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거리. 십대 자녀들과 함께 정원에 더 가까이 살고 싶었던 이 가족에게, 그 단차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기존 주택의 구조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단절이었다. MATA Architects는 지면 아래 증축 공간을 ..
"나는 건축을 지우고 싶다. 건물이 대지와 경관 속으로 녹아드는, 그런 건축을 만들고 싶다."— 구마 겐고 (隈研吾) Traditional wooden townhouses inform interiors of Kengo Kuma-designed Capella Kyoto hotel골목이 품은 논리 교토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기온 거리 한 켠, 오래된 초등학교 터 위에 구마 겐고 건축사무소가 카펠라 교토를 설계했을 때, 그 주변 골목에는 이미 하나의 건축 언어가 수백 년째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마치야(町家), 교토 고유의 전통 목조 도시형 주택이다. 마치야는 앞쪽에 작은 상점을 두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생활 공간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는 정원이나 중정이 끼어들며..
"건물은 스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루이스 칸 (Louis Kahn) Graham Baba Architects-West Canal Yards도시의 끝자락, 운하의 기억 시애틀의 십 캐널(Ship Canal) 연안, 볼라드(Ballard)와 퀸 앤(Queen Anne) 사이의 좁고 긴 땅에 두 채의 건물이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한때 시애틀 어업의 핵심 거점이었던 이 자리에는 수산물 가공 공장과 약 2,800㎡ 규모의 냉동 창고가 나란히 서 있었다. 거칠고 단단한 이 구조물들은 도시가 팽창하는 동안에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켰고, 이제 Graham Baba Architects(GBA)의 손에 의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지가 말하는 것들 대지가 품고 있던 가능성은 상..